2026년 08월 02일 주일 예배 설교
그제서야 알았더라
사람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건강을 잃고나서야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사람과의 관계가 멀어진 뒤에야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부모님의 말씀도 세월이 지나며 깨닫게 된다.
므낫세는 유다의 왕이었다.
므낫세도 처음부터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았으면 좋았을텐데, 나중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므낫세는 어떤 왕이었을까?
히스기야 왕의 아들이었다.
히스기야 왕은 이스라엘과 유다 왕에게 좋은 평을 받은 왕들이 없는데, 그중에 손꼽히는 칭찬받는 왕이었다.
신앙을 회복시켰고, 성전을 깨끗하게 하고, 우상을 제거하고, 백성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했다.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했떤 개혁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이러한 통치를 무려 55년이나 했다.
오랜 통치 기간과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쓰지 않았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굉장히 악한 일을 했던 왕인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이라면, 므낫세를 볼 때 어떤 마음이 들까?
괘씸하고, 열을 받을 것 같다.
내가 선택한 사랑하는 자녀들을 우상 숭배로 끌고 가고 있으니, 화가 나셨을만도 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므낫세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악한 행동을 하는데도 화를 내지 않으셨다.
역대하 33장 10절
10.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므낫세와 백성들에게 우상을 버리고 돌아오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들이 듣지 않았다.
귀가 막혔다는 것이 아니라, 말슴을 들었는데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므낫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성전을 개혁하고 예배도 드리는 것을 보고 듣고 성전에서 자랐을텐데, 그럼에도 므낫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생각과 고집을 앞세우며 살았다.
역대하 33장 11절
1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
당시에 앗수르가 그 지역의 최고로 강대했던 제국이다.
그런데 앗수르가 유다를 쳐들어 와서 므낫세를 쳐들어와서 포로로 끌고 갔다.
왕이 당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비참한 일 중 하나는 적대국에게 포로로 끌려 가는 것이다.
왕으로써 자존심도 다 날라가고, 비참한 것이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
므낫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셨기에,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사용하셨다.
므삿세를 잡아간 것은 앗수르이지만, 이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었다.
그러니, 므삿세의 인생은 앗수르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었다.
물론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많은 고난과 어려움들을 우리의 죄의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므낫세가 당하는 고난의 이유를 분명하게 말한다.
므낫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에, 깨어주시려고 앗수르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사랑을 초월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어느정도 나를 힘들게 하고, 마음 안 들게 하는 사람을 어느 순간 놓아버린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릴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길에서 멀어지게 되면, 그냥 냅두지 않으시고 다시 돌아오게 하신다.
너무 고집이 세다면, 앗수르처럼 세개 해서라도 돌아오게 하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우릴 포기하실 수도, 내버려 두실 수도 있다.
하지만, 강하게 혼을 내시기도 하시며, 어떻게든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게 하시고, 우릴 살아가게 하신다.
하나님은 우릴 사랑하신다.
므낫세처럼 우리가 포로로 끌려가서 깨닫지 말고,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들어보자.
그때 듣는 것이 순종하는 것이 은혜이다.
나를 향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귀담아 살아가길 바란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 하지만, 므낫세에게는 엄청 큰 고통이었다.
므낫세는 그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했을까?
성경에서 므낫세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아하스라는 왕이 있었다.
역대하 28장 22절
22.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아하스 왕이 환란 가운데 있을 때, 더욱더 하난미과 멀어지고 범죄했다.
역대하 33장 12절
12.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그러나 므낫세는 달랐다.
환란을 당했을 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졌고, 마음을 돌이키고, 하나님께 간구했다.
고난이 사람을 자동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며, 고난 당한다 해서 다 정신 차리는 것이 아니다.
고난 가운데 당하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나를 낮추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기도하며 나아가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
므낫세가 하나님께 잘못됨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결단하며 회개하며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하나님이 환란을 허락하신 것은 제기불능으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다.
잘못된 길로부터 돌아올 수 있도록 징계하신 것이다.
인생의 고난과 어려움 속에 있다면, 그 이유를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과 멀어지지 말자.
아하스 왕처럼, 하나님과 멀어지지 말고, 므낫세처럼 그 고난 가운데 환란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찾고 가까워지면서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힘쓰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길 바란다.
므낫세가 자기 인생을 원하는대로 살다가, 우상숭배를 하면서 살다가, 앗수르의 포로로 끌려가는 치욕스러운 일을 당했다.
이 환란 가운데 벗어날 길이 있어보이는가?
포로라는 것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기에,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즉, 풀려날 길이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고백하니, 일이 일어났다.
역대하 33장 13절
13.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이 낮추셨으니, 하나님이 그만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 낮추면, 사람의 힘으로 올라갈 수 없다.
왜? 하나님이 하셨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역대하 7장 14절
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 약속이 우리에게도 임하고 있음을 믿자.
우리도 돌아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구하고 기도하면 응답하신다.
므낫세의 회복이 당시 유다 나라에 좋은 교보재였다.
역대기에 있는 이야기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도 배웠을 것이다.
오늘 우리도 므낫세 얘기를 들으며 하나님이 이런 분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오늘 내가 하나님 앞에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우릴 회복시키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돌아가자.
그러면 된다.
예배 후 요약
: 므낫세는 경건한 왕 히스기야의 아들이었지만, 아버지의 신앙을 이어가기보다 우상숭배와 악행으로 유다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여러 번 돌이키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는 끝내 듣지 않았고, 결국 앗수르를 사용하여 그를 포로로 끌려가게 하셨다. 그러나 그 환난은 그를 버리기 위한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려는 징계였다. 므낫세는 고난 가운데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간구했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셔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왕위를 회복시켜 주셨다. 그제야 므낫세는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우리의 완고함을 그냥 두지 않으시고, 때로는 고난을 통해서라도 돌이키도록 부르신다. 중요한 것은 고난 자체가 아니라 그 고난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이다. 아하스처럼 더욱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수도 있고, 므낫세처럼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미루어 듣기보다 말씀하실 때 즉시 순종하며, 환난의 순간에도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회개하며 돌아오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의 기도를 들으시며 회복으로 인도하시는 신실한 아버지이심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