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0098

2026년 06월 21일 주일 예배 설교

스바냐 3장 14~17절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나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사람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 힘을 얻는다.

  • 아이도 어른도 누구나 동일하다.

  • 오늘 본문의 스바냐 말씀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스바냐는 처음부터 기쁨을 말하는 책은 아니다.

  • 하나님의 심판을 강하게 선포하는 책이다.

스바냐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에 육안으로는 평안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병들어 있던 나라였다.

  •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다른 신을 의지했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점점 멀어졌다.

  •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들이 들어오게 되었다.

  • 영적으로도 불안했고, 정치적으로도 불안했던 시대였다.

우상을 섬기면서 말씀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교만했던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얘기하신다.

  • 그런데 놀랍게도 스바냐서가 끝나는 시점이 되어서, 하나님께서는 심판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회복시키시겠다고 말씀하신다.

  • 심판 가운데에서도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남은 자를 부르시고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다.

  • 하나님의 마음을 살펴보자.

스바냐 3장 14절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부르시는데, 호칭을 다양하게 하고 계신다.

  • "시온의 딸, 이스라엘, 예루살렘 딸"

  • 서로 호칭은 다르지만, 결국 가리키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

  •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렇게 다양한 표현으로 부르고 계실까?

  • 이 호칭은 부정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애칭과 같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부르실 때 차갑게 부르신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부르신 것이 아니라, 사랑을 담아서 불러주고 계신 것이다.

  • 죄로 인해 심판을 받아야 할 백성이고,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백성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다시 그 자녀들을 불러주신 것이다.

  • 실패하고 좌절해 있는 사람에게 가서, "너 이제 끝났다"라고 하면, 그 사람은 얼마나 더 깊이 주저 앉을까?

  • "다시 시작하자. 넌 아직 포기하기에 일러. 다시 할 수 있어"라고 하면, 그 말 한 마디에 일어설 힘이 생긴다.

  •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향해 그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 그래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아직 유다 백성들의 현실이 해결되지 않았고, 여전히 심판이 있고, 불안전한 시대가 있었다.

  • 하지만,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라 말씀하시며, 이를 통해 유다 백성들은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다.

  • 상황은 그대로인 것 같아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으로 부르신다면, 이것이 성도의 기쁨이다.

  • 성도의 기쁨은 우리의 문제가 다 사라졌을 때 오는 감정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뻐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유다의 문제가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 하나님이 건네신 약속하신 것으로 인해 기뻐하라고 하신 것이다.

  • 그 미래가 있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라고 하신 말씀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날 때가 있다.

  • "하나님, 기쁜 일을 주시고나서 기뻐하라고 하시던지, 지금 제 상황 가운데 기뻐할 일이 없는데, 기뻐할 상황입니까?"

  • 그런데도 억지 웃음을 지으라는 의미가 아니시다.

  • 우릴 버리지 아니하셨고 회복시키실 것이기에, 기뻐하라는 것이다.

스바냐 3장 15절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 하나님께서 '형벌'을 제거하셨는데, 이는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끝내주신 것이다.

    •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 대속하셔서 이를 행하셨다.

  • 또 하나님께서 '원수'를 쫓아내셨다.

    • 원수는 쫓아내도 쫓아낼 수 없는 존재인데, 이를 행하셨다.

  •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고 말씀하신다.

    • 하나님은 멀리서 보시기만 하시는 분도 아니시고, 명령만 하시는 분도 아니시다.

    • 우리와 함께 하시고 책임지시기에,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스바냐 3장 16절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 오늘 하루를 살면서 많은 일들이 있고, 위축될 때도 마음이 어려울 때도 고난과 슬픔의 때가 있을 수도 있다.

  • 손을 늘어 뜨린다는 것은 힘이 없어서 내려놓는 것이다.

  • 근데 그럴 때 하나님꼐서 우리에게 아래와 같이 말씀하신다.

스바냐 3장 17절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 전능자 = 용사

    •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릴 구원하시기 위해 대신 싸우시는 용사인 것이다.

  • '너'를 '나'로 읽어보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지 못할 때부터 우릴 사랑하고 계셨다.

  • "하나님은 나같은 사람도 사랑하실까. 실망하시지 않으실까" 라고 생각할 수 있고,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교만함을 기뻐하시지 않으시지만, 앞으로 우리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과 영생을 누리실 모습을 바라보시니, 기뻐하실 수밖에 없으신 것이다.

  • 지금의 모습은 사랑하기 어려운 모습들이 있지만, 우릴 지으신 태초의 모습을 기억하고 계시고, 주님 안에서 회복하고 살아갈 모습을 바라보고 계시기에, 사랑으로 돌보시고 지켜주고 계신 것이다.

사랑의 종류가 세가지 나온다.

  •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

    • 너무 기쁘고 주체가 안 되는 것이다.

  •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

    • 저절로 기쁨이 나온다.

  • 잠잠히 사랑하신다.

    • 잠자고 있는 아이를 보면, 잘 때가 제일 에쁘다.

    • 그렇게 자고 있는 아이가 예쁘다고 깨우고 건드리면, 그것이 정말 아이를 사랑하는 표현일까?

    • 소리내어 사랑할 땐 소리내어 사랑하고, 잠잠히 사랑할 땐 잠잠히 사랑하는 것이다.

  • 즉, 조용하지만 깊은 사랑으로, 오래 참음으로 사랑하실 때가 있다.

  • 근데 우리는 이러한 잠잠한 사랑을 잘 못 느낀다.

  • 하나님의 침묵이나 무관심하시는 것 같아 보이는 그 가운데 있지는 않는가?

  • 그 상황이 조용히 사랑하셔야 할 상황이니, 조용히 사랑하시는 것이다.

로마서 5장 8절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릴 구웒셨고, 지금도 성령으로 함께 하신다.

  •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보며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기 전에, 하나님이 우릴 먼저 기뻐하시며 사랑하셨다.


예배 후 요약

: 스바냐는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던 선지자였지만, 책의 마지막에서는 놀랍게도 회복과 사랑의 하나님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무너지고 심판받아야 할 유다 백성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시온의 딸”, “이스라엘”, “예루살렘 딸”이라 부르시며 사랑으로 다시 품으신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현실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회복시키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성도의 기쁨은 상황이 좋아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끝까지 붙드신다는 약속 위에 세워진 믿음의 기쁨임을 깨닫게 된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형벌을 제거하시고, 원수를 물리치시며, 친히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분이시다. 특히 스바냐 3장 17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준다. 하나님은 우리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고, 즐거이 노래하시며, 때로는 잠잠히 사랑하신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침묵을 무관심으로 오해하지만, 그것마저도 깊고 인내하시는 사랑의 표현일 수 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고, 내가 하나님을 기뻐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기뻐하셨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 오늘도 내 모습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될 나를 바라보시며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두려움보다 감사와 소망으로 살아가기를 결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