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4월 19일 주일 예배 설교
여기까지, 앞으로도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판단할 때, 내 눈 앞에 보여지는 것만 가져갈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요즘 좀 괜찮은거 같아요. 요즘은 힘든거 같아요"라고 표현하고는 한다.
지금을 기준으로 내 인생을 해석한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의 인생을 '한 시점'으로 보지 않고, '한 순간'으로 보시지 않는다.
과거, 현재, 미래를 포함한 하나의 흐름으로 보신다.
이사야 46장 10절
10.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보고 계시는 분이시다.
지금 이 순간을 보고 느껴지는 감정을 가지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전체를 보고 일하신다.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돌보실까?
사무엘상 7장 12절
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사무엘의 이 고백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지난 과거의 시간을 다 돌아본 후에 나온 고백이다.
이스라엘의 과거를 생각해보면,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만한 과거는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전쟁에서 지고 언약궤까지 뺴앗기는 수모를 겪었다.
강한 민족 보다는 무너진, 연약한 민족에 가까웠다.
그런데, 역사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무너지지도, 끊어지지도 않고, 계속해서 유지됐다.
바로 하나님이 지키셨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잘해서, 강해서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붙들었기 때문에 이어질 수 있었다.
그래서 사무엘이 돌을 세우며, 여기까지 하나님이 도우셨다고 고백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었다는 고백
넘어졌던 시간, 실패했던 시간, 부끄러웠던 시간까지 모든 시간마다 하나님의 도우신 손길이 있었다.
사무엘의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바란다.
우리 인생도 돌아보면, 잘한 것만 있지 않고, 실패도 후회도 넘어짐도 있었다.
잘한 것보다 잘 못한 게 더 많이 생각이 난다.
그런데 그 모든 시간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여기까지 하나님께서 날 도우셨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 그것이 사실이니깐 말이다.
시편 124편 1~2절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2.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우리도 동일하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릴 지키셨는데, 왜 우릴 지키실까?
우린 연약하고 부족한데 말이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이유 없이 지키신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도 있지만, 하나님께는 계획이 있으셨다.
창세기 12장 3절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스라엘 민족이 되는데, 대가 끊겨서 다 망해버리면?
온 땅의 족속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민족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 같운데, 다윗의 계보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다는 약속을 하셨다.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온 세상이 하나님의 복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라는 계획이 있었기에, 이스라엘을 지키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있으시기에, 나를 지키시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인 것이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고, 사명이다.
단순하게 편하게 먹고 놀면서 제멋대로 살라고 지켜주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고, 오늘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시는 뜻이 있기에, 우릴 자녀로 부르시고 우리 인생을 지키신다.
사무엘상 7장 13절
13.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지금까지 우릴 지키신 하나님은 앞으로도 우릴 지켜주신다고 약속하신다.
이스라엘이 강해진 것도, 블레셋이 약해진 것도 아닌, '여호와의 손'이 막으셨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집중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막아주셔야 인생이 지켜진다고 말씀하신다.
이 보호하심이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에게 사명이 허락된 것이다.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으시면, 결코 지킴을 못한다.
시편 127편 1절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우리가 이 예배의 자리에 나올 수 있음이 큰 놀라움이고 감사함이다.
하나님의 돌보심과 지키심에 있다.
눈을 못 떴을 수도 있는데, 우리가 눈을 뜰 수 있었다.
교회로 오는 길에 사고가 날 수도 있었는데, 무사히 교회로 올 수 있었다.
이 발걸음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보호하심이 있으셨다.
우리를 향해 참 많은 어려움과 문제가 덮쳤을지는 다 모른다.
"하나님 없으면 나는 살 수 없다. 하나님이 지켜주셔서 내가 여기 있다"
히브리서 13장 8절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릴 때에 따라 보이지 않게 이끄시고 막으시고 인도하신다.
영원토록 지켜주신다.
하나님께선 나에게 사명을 감당하라고 이끄셨고, 앞으로오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지키신다.
일 시키시려고 지키신다고 생각하진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시키시려고 날 불러주신 게 감사한 일이다.
사실, 우린 하나님의 일을 같이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릴 초대하셨다.
심지어,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지켜주신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보자.
우리 개인에게 비추어 생각해보았지만, 교회에 비추어 생각해보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2026년 오늘까지 지키셨다.
86년 개척되고 40년 동안 보낸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이끄심이 있었다.
힘들고 어렵고 고비를 넘어야 할 순간도 있었지만,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것은 하나님의 지키심 덕분이다.
사람이 지킨 게 아니라, 환경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붙드셨기에 온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붙드셨을까?
우리에게도 교회에게도 허락된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에베소서 3장 20절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것으로 이루실 분이시다.
이를 우리가 함께 감당해야 한다.
예배 후 요약
: 사무엘이 에벤에셀의 돌을 세우며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고 고백한 것은 단순한 승리의 선언이 아니라, 실패와 연약함까지 포함한 모든 시간을 돌아본 믿음의 고백이었다. 이스라엘은 강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붙들어 주셨기에 이어질 수 있었다.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분이시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막으시고 지키시며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역시 우연이나 능력의 결과가 아니라,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열매임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신 이유는 단순한 보호가 아니라, 사명을 위한 보존이다. 이스라엘을 지키신 것은 구원의 계획을 이루기 위함이었듯이, 오늘 우리를 붙드시는 것도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과거에 도우신 하나님은 앞으로도 동일하게 지키시며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의 형편이 아니라,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로 서야 하고, 앞으로의 길 또한 하나님께 맡기며 사명을 감당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