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3월 01일 주일 예배 설교
좋은 게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갈등을 좋아하지 않고, 평안하고 함께 가는 길을 걷길 원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자는 것이 세상에서 박수를 받는 시대다.
에스라 4장 1절
1.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이스라엘 백성이 무너진 성전을 다시 짓는 건축을 진행하려고 하는 상황이었다.
이전의 영광을 다시 붙잡는 것이 아닌,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다시 확립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있었다.
즉, 이들은 성전 재건에 방해하는 세력들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발걸음에는 반드시 방해하는 움직임이 있다.
문제는 겉으로 보기에는 공격이 아니라, 마치 나를 위한 거처럼 정체를 숨기고 공격이 다가온다.
좋은 제안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 때에, 우린 혼란스러워지게 된다.
우리 인생 가운데 하나님을 방해하는 공격들이 있는데, 어떻게 찾아오는지, 우리가 그 공격을 어떻게 막아내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을지 나눠보려고 한다.
에스라 4장 2절
2.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북 이스라엘은 멸망 당했고, 그때 그곳에 쳐들어온 앗수르가 기존 백성은 다른 땅으로 포로로 잡아가고 추방한 뒤에, 빈 자리에 다른 민족들을 데려와서 강제 이주시켰다.
결국 혼합 민족을 이루게 되었는데, 이들이 하는 말이었다.
본인들도 하나님을 믿으니, 같이 성전을 재건하자는 것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좋게 보이는 말이다.
근데 이런 대상을 1절에서는 '대적'이라고 표현한다.
왜 그렇게 표현하셨을까?
열왕기하 17장 33절
33. 이와 같이 저희가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하나님만 경외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도 경외했다.
자신들이 믿고 있는 신들도 같이 섬기고 있다.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만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보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문제를 주는 존재들이라 판단하셔서 대적이라고 표현하신 것이다.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하니님께 나아가는 길을 막으려는 존재들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사단과 마귀
교회 가려고 하면 일이 생기게 하거나, 피곤하게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데 사탄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에, 때로는 우리를 직접적으로 공격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교묘한 방법을 사용한다.
"하나님을 믿지 마!"가 아니라, "하나님만 믿지는 마! 다른 것도 믿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영적의 혼합을 절대로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짓는 성전은 단순히 건물이 아닌,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다.
그곳에 혼합된 것들이 들어오면 거룩함이 무너진다.
사단은 전체를 부정하지 않고, 조금 섞는다.
그런데 이 말은 단순한 협력이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발걸음을 완전히 엉뚱한 곳으로 틀 수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좋아 보이지만, 듣기 좋은 말이 항상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에스라 4장 3절
3.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성전을 함꼐 짓자고 제안했을 때, 이스라엘은 단호하게 얘기했다.
베타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냉정하게 굳히 얘기해야 했을까 싶을 수 있다.
지도자들은 감정적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얘기한 것이다.
또한, 성전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감당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은 이해심이 부족함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된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었다.
비행기는 목적지를 향해 날라가는데, 각도를 살짝 움직였다고 해보자.
처음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여도, 수시간, 수천km를 이동하면 엉뚱한 데에 가게 된다.
신앙도 비슷하게 다가온다.
"이 정도면 되겠지. 다들 이렇게 하잖아"
우리 삶 가운데에서도 이러한 선택의 순간이 온다.
직장, 가정, 관게 속에서 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의 원칙을 지킬 것인가?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서 버리겠는가?
하나님의 진리를 선명하게 붙들 것인가? 분위기를 흐리지 않기 위해 복음을 흐리겠는가?
빨리 가기 위해 방향을 타협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린 올바르게 선택해야 한다.
빨리가 아니라 바르게 가야 한다.
에스라 4장 4~5절
4.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5.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처음에는 부드럽게 다가왔던 이들이 거절을 당하니 완전히 태도를 바꾸었다.
이스라엘 손을 약하게 했다.
건축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다.
두려움을 심어주어, 16년 동안 성전 건축을 방해했다.
즉, 그들은 성전 건축이 목적이 아니었다.
동참이 아닌 통제.
타협이 통하지 않으니 노골적으로 행하게 된 것이다.
지도자들의 말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했다.
그러면 그 다음에 우리 인생 길은 평안해질까? 험난해질 수 있을까?
평안이 올 것 같은데, 더 갈등이 시작되는 것처럼, 험난해질 수 있다.
물론 그 끝은 하나님이 평안하게 하시고, 은혜를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한 그 순간에는 오히려 어려움이 증폭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성경은 수많은 인물들도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
하나님의 자녀는 언제나 이런 순간을 거친다.
다니엘이 기도를 타협하지 않겠다 하자, 사자굴에 들어갔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역하기 전에 금식하실 때, 사단이 와서 돌을 떡으로 만들라고 했다.
오늘 본문은 단순한 옛날 얘기가 아니다.
우리 삶 가운데 숨쉬는 말씀이다.
우리 인생에서도 많은 제안들이 있다.
"하나님도 붙들고 세상도 붙들어봐. 예배도 드리고 성공도 해야지. 복음을 말해도 눈치는 챙겨야지. 진리는 지키는데, 분위기는 맞추자"
겉으로는 다 좋은 말처럼, 균형잡힌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선택이 우리의 영적인 방향을 바꾸고 있게 된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택하신 족속, 소유된 백성임을 기억하자.
이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길이다.
좋은 게 다 좋은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좋은 것은 하나님의 뜻이 좋은 것이다.
예배 후 요약
: 이스라엘이 성전 재건을 시작하자 대적들은 “우리도 함께하자”고 제안한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찾는다고 말했지만,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만이 아닌 다른 신들과 섞인 혼합 신앙이었다. 그래서 지도자들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는 배타성이 아니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결단이었다. 성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자리였기에, 타협은 곧 방향을 잃는 일이었다. 결국 거절당한 대적들은 노골적으로 방해하며 건축을 멈추게 한다. 좋은 제안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일을 흐리게 하려는 시도였음을 보여준다.
이 말씀은 모든 “좋은 말”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하나님도 붙들고 세상도 붙드는 선택은 균형처럼 보이지만, 결국 방향을 틀게 만들 수 있다. 신앙은 빠르게 가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가는 것이다. 때로는 단호한 거절이 필요하고, 그로 인해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오늘도 타협 대신 원칙을, 분위기 대신 진리를 선택하며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