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1월 25일 주일 예배 설교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순간
민수기 20장 말씀은 조금 우리에게 편하지만은 않은 말쓰미다.
광야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인도했던 모세가 하나님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점이었다.
오늘 본문 속 모세의 상황은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십 년 동안 반복되어서 같은 요구와 원망, 말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모세는 백성 가운데 그 말들을 온 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우리도 같은 문제를 계속 듣고, 같은 상황이 되풀이 되면 감정을 숨길 마음이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모세를 보시곤, 이해하지 않으셨다.
불평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물을 주셨다.
조금은 하나님의 마음이 이해하기 어렵다.
왜 하나님은 이 순간을 그냥 넘어가시지 않으셨을까?
하나님은 모세가 감정 부리는 것을 이 말씀에서 처음 보신 것이 아니었다.
모세는 감정을 하나님 앞에서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출애굽기 5장 22절
22.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모세가 하나님께 불평하고 있다.
민수기 11장 15절
15.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 이 꼴 보게 하시려고 저 살게 하시는거에요? 차라리 절 죽이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모세는 백성의 문제를 두고 하나님께 항변하고, 마음을 숨기지 않았었다.
그때 하나님의 반응을 보면, 그때 하나님은 모세의 말을 들어주셨고 설명해주셨고, 도와주셨고 세워주셨다.
즉, 하나님이 모세에게 원하신 것은 감정 부리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 그 자체를 죄로 보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쳤다는 것도 알고 계시고, 우리가 더 버틸 힘이 없다고 느끼는 때도 다 알고 계신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감정을 문제 삼으시는 게 아니라면, 지금 뭐가 문제였을까?
모세의 무엇을 보셨기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큰 질책을 하셨을까?
회막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준 명령은 분명했다.
민수기 20장 8절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반석에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허락한 것은 '반석에게 명령'하라고 한 것이지, '반석에게 고함'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말씀으로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것이 흔한 상황은 아니고, 되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고, 우리 안에 분명히 드러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자 함이 하나님의 바램이고 원하시는 방향이었다.
근데 그 반석 앞에서 모세가 보인 것은 전혀 달랐다.
민수기 20장 10절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반석에 명령하기 전에, 대중들을 향해 먼저 이야기했다.
"야 배신자들아. 똑똑히 봐라. 우리가 널 위하여 물을 내어주어야 하냐, 아깝다"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분노와 짜증이 가득한 모세의 감정을 볼 수 있다.
문제는 하나님이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하신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분노와 열변을 쏟아낼 때에는 아무 말도 하시지 않으셨지만, 사람 앞에서 쏟아낼 때 하나님께서 이것을 지적하셨다.
하나님보다 사람들 앞에 먼저 쏟아져 나온 것이 문제였다.
반석에서 물이 나온다면, 하나님이 행하신 것인데, 주어가 '우리'가 되어버렸다.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야 할 자리에, 지쳐 있는 모세의 마음과 분노가 먼저 드러났다.
결과적으론, 물이 나왔고 백성과 가축들이 물을 마셨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결과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냐를 보신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거룩함보다 모세의 감정이 먼저 드러났다.
감정이 하나님보다 앞에 서 버린 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가려버린 것을 지적하고 계신 것이다.
민수기 20장 12절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너희가 나를 믿지 않았다"라는 말이 모세에게 어울릴까?
모세는 그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알았고, 하나님을 떠난 적도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근거는 하나님보다 나의 감정과 판단을 더 앞세우는 순간에, 그 모습 자체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의 모습과도 같다.
이것은 우리도 동일하다.
감정이 하나님보다 먼저 드러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릴 때,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삼으신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드러나야 할 자리에, 그 앞에서 모세가 열을 토하면서 일들 가운데 모세가 화난 것이 드러났다.
이로 인해 하나님이 가려지게 되었다.
사실, 하나님은 광야 생활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불평을 많이 했다.
근데, 한편으론 이해가 되는 것은 광야 길이 결코 쉽지 않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우리가 불평한다고 해서 계속 잘못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다.
긍휼의 마음으로 돌보아주시는 상황이었지만, 결과는 달라졌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도 감정에 영향을 미칠 때가 있다.
그런데 그 감정을 우리가 사람들에게 먼저 쏟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의 말과 태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드러나고 있는가? 가리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의 감정이 드러난다는 것은 꼭 폭발하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감정을 닫아버리는 방식으로도 내 감정을 드러낼 수도 있다.
화를 내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면, 겉으로 보기엔 차분하고 매너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도 감정 표현이다.
성경은 이러한 상태를 결코 안전한 상태라고 말하지 않는다.
잠언 25장 28절
28. 자기의 기분을 자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성이 무너져 성벽이 없는 것과 같다.
성벽은 폭파해도 무너지지만, 방치하고 관리하지 않아도 무너지게 되어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폭발해도? 차가워도? 미지근하게?
잠언 4장 23절
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으로부터 생명의 근원이 나오기에, 하나님은 마음을 지키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정 없는 사람이 되길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내 감정을 하나님 앞에 나와 꺼낼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을 바라신다.
뜨거운 물, 얼어 있는 물
주변을 젖게 만들거나, 흐르지 않거나, 온도를 전하지 못하는 것.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성경은 이 두 가지 모습을 경계한다.
둘다 하나님 앞에서 다뤄지지 않는 모습이기에 말이다.
이로 인해 하나님이 아닌, 인간의 모습이 더 먼저 드러나게 된다.
우리가 모세보다 나은 존재가 아니다.
우리도 지치고, 답답하고, 마음 속에 쌓아둔 감정들이 있다.
성경은 어떤 감정이든지, 하나님 앞에서 먼저 드러내지 않은 감정은 위험한 감정이다.
너의 감정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물어보신다.
예수님도 감정이 있으셨다.
그래서 예수님도 슬퍼하셨고, 분노하셨고, 고통도 느끼셨다.
하지만, 그 감정을 사람들에게 쏟아내시지 않으셨다.
누가복음 23장 46절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자신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하나님께 맡기고 있다.
욕을 하셨을 수도 있지만, 참으셨다.
예수님은 끝까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리지 않으셨음을 기억하자.
감정을 없애는 것이 믿음인 것이 아닌, 내 감정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믿음이다.
사람에게 말하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말하는 자들이 되길 바란다.
예배 후 요약
: 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 8~13절에서 고난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를 분명히 밝힌다. 그는 자신이 결박된 상황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신했고, 택함 받은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과 영원한 영광을 얻도록 하기 위해 모든 고난을 기꺼이 감당했다. 주와 함께 죽으면 함께 살고, 인내하면 함께 왕 노릇 하게 된다는 신앙고백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 위에 세워진 믿음의 고백이었다.
이 말씀은 고난 속에 있는 우리의 시선을 다시 복음으로 향하게 한다. 결과와 상황에 매이기 쉬운 순간에도, 말씀을 붙들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과 인내의 힘을 주신다. 우리는 흔들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기에, 고난에 매이지 않는 삶은 복음을 더 가까이 붙드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기다림과 불안의 시간 속에서도 주님을 의탁하며, 기도와 말씀으로 복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삶을 결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