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1월 04일 주일 예배 설교
형통의 복
형통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들에게는 쉽게 쓰는 말이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유는 성경에서 많이 나오고, 형통한 삶이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형통의 뜻을 잘 알기 위해서는 성경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형통을 잘 보여지는 인물 중 하나가 '요셉'이다.
요셉의 삶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형통한 삶이었다.
노예로 팔려가기도, 감옥에 가기도 했는데, 우리가 생각한 형통은 일이 잘 풀리는 것처럼 보이기에, 의문이 든다.
창세기 39장 2절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었다.
형통한 사람인데, 그가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었다.
즉, 요셉은 자유로운 사람이 아닌 노예였다.
마음대로 살 수 없고, 심지어 요셉은 가족들과도 함께 살고 있지 않다.
그런데, 성경은 이 상황을 설명하면서 요셉이 이 상황에 있을 때 형통한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즉, 성경이 말하는 형통이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과는 좀 다르다는 것이다.
성경은 요셉의 감정, 노력, 가능성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형통하게 된 것임을 말한다.
요셉은 혼자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요셉의 인생은 쉽지 않았다.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먼 땅인 애굽으로 팔려 갔다.
열심히 그 집에서 일을 하면서 인정을 받았고, 가정 총무가 되었다.
그런데 그 과정 가운데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했지만, 안 넘어갔다.
그래서 누명의 씌어 요셉을 감옥에 보내버렸다.
감옥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두 사람의 꿈을 추측해줬고, 나가게 되면 도와달라고 했지만 잊게 되어서 2년 동안 감옥에 갖게 되었다.
수십년 간 겪은 게 아니라, 불과 몇 년 안에 이 모든 과정을 겪었다.
흔히 우리가 볼 때에는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애굽을 다스릴 때 형통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뭔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긍정적인 결과를 누렸을 때 형통하게 됐다고 본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고, 요셉의 결과 보다 요셉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설명했다.
성경은 형통이란, 우리가 승승장구 되고 일이 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는 삶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성경은 "요셉이 총리가 되면 형통해진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형통해진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아래와 같다.
현재 우리 모습이 주변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형통하지 않은 삶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경은 우리에게 "네가 지금 어떤 상황에 있고, 어떤 문제에 있고, 무슨 노력을 하고 있냐"가 아니라, "네가 하나님과 그 자리에서 살고 있냐"라고 물으신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그 길을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돈이, 좋은 직장이 우선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생이 우선시 되길 바란다.
시편 1편 3절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형통한 삶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고 말한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물가 옆에 심어져서 철에 따라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
나무에게 중요한 것은 키가 크고, 날씬한 것과 같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적당한 물과 영양분을 받을 수 있는 곳에 심어지는 것이다.
스펙, 생김새는 그 다음이고, 먼저 중요한 것은 살 수 있는 힘을 공급받는 것이다.
요셉을 생각해보자.
그는 부지런히 다녔다.
인생은 계속 바뀌었지만, 요셉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고 성경은 말한다.
물론,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게도 흐린 날이 찾아오기도, 날이 추워지기도 할 수 있다.
그러다 뿌리를 내리게 되면서 다시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풍성해지게 된다.
하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되면, 결코 이와 같이 될 수 없다.
성경은 요셉의 인생을 구분지어서 판단하고 얘기하지 않는다.
요셉은 어린 시절부터 총리가 된 모든 순간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형통을 누렸다.
우리도 때로는 인생이 정말 잘 풀릴 때도 있지만, 반대로 어려울 때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할 때 "네가 지금 나와 함께 있냐"라고 물으시며, 이것이 중요하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딱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지금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는가, 하나님께 뿌리 내리고 있는가"
이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점검해봤으면 좋겠다.
예배 후 요약
: 성경이 말하는 형통은 일이 술술 풀리고 결과가 좋아지는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이다(창 39:2). 요셉은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까지 갔지만, 성경은 그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므로 형통했다”고 말한다. 즉 형통의 기준은 내 환경·성과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동행이다.
시편 1편처럼 형통한 사람은 시냇가에 심긴 나무와 같다. 겉모습이 아니라, 생명의 공급을 받는 자리/하나님께 뿌리내린 자리에 서 있을 때 철을 따라 열매 맺고 잎이 마르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던져지는 질문은 하나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