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2일 주일 예배 설교
내 '고집'이 '고백'이 되다
하나님이 내리신 10가지 재앙
물이 피로 변하는 재앙
개구리 재앙
이 재앙
파리 재앙
돌림병 재앙
악성 종기 재앙
우박 재앙
메뚜기 재앙
흑암 재앙
바로의 마음이 완악했기에 계속해서 재앙이 이어졌다.
출애굽기 9장 31~32절
31. 그 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상하였으나
32. 그러나 밀과 쌀보리는 자라지 아니한 고로 상하지 아니하였더라
바로는 황폐해지고 쓰러진 나무들이 있음에도, 상하지 않은 밀과 쌀보리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바로의 마음을 알고 계셨고, 완악한 바로의 마음을 완전히 산산조각내셨다.
메뚜기 재앙을 통해서.
출애굽기 10장 3~6절
3.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되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
4. 네가 만일 내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일 내가 메뚜기를 네 경내에 들어가게 하리니,
5. 메뚜기가 지면을 덮어서 사람이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라. 메뚜기가 네게 남은 그것 곧 우박을 면하고 남은 것을 먹으며, 너희를 위하여 들에서 자라나는 모든 나무를 먹을 것이며,
6. 또 네 집들과 네 모든 신하의 집들과 모든 애굽 사람의 집들에 가득하리니, 이는 네 아버지와 네 조상이 이 땅에 있었던 그 날로부터 오늘까지 보지 못하였던 것이리라'. 하셨다." 하고 돌이켜 바로에게서 나오니
모세와 아론은 바로를 만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전했다.
하지만, 6절처럼 돌이켜서 그들은 바로에게서 나왔다.
왜 그냥 나왔을까?
바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여전히 그의 마음이 완악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내보내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메뚜기 떼를 보내셔서 농작물들까지 먹어 치워버리겠다고 하셨다.
이 재앙은 얼마나 무서운지 말씀하셨고, 바로의 작은 희망의 불씨마저 끄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여전히 바로의 마음은 완악함으로 가득했다.
이때, 바로의 신하들이 등장한다.
출애굽기 10장 7절
7. 바로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 되리이까. 그 사람들을 보내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 하고
바로의 신하들이 답답해서 역정을 내고 있는 모습이다.
하나님의 행하심을 몸으로 체험하고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의 모습에 변화가 없자, 바로를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하들이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 다시 데려왔다.
출애굽기 10장 8절
8.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로 다시 데려오니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갈 자는 누구 누구냐."
바로는 그들에게 여호와를 섬기라고 했지만, 그 사람들이 누구냐고 물었다.
바로는 애굽에서 나가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그럴 마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출애굽기 10장 9절
9. 모세가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 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 뿐만 아니라, 제사를 드릴 때 필요한 가축들까지 다 데리고 나가겠다고 말했다.
출애굽기 10장 10~11절
10.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와 너희의 어린 아이들을 보내면,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함과 같으니라. 보라 그것이 너희에게는 나쁜 것이니라.
11.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가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
바로가 모세와 아론에게 말하는 뉘향스를 알아야 한다.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
즉, 쫓아낸 사람의 심경이 몹시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났음을 의미한다.
"만약 내가, 남녀노소와 가축들을 보내게 된다면,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함과 같다."라고 말하는 것이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비꼬고 모욕하는 식으로 말했다.
심지어, 이것이 그들에게 나쁜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바로는 11절처럼, 남자들만 가라고 말했으며, 이는 요청이 아닌, 비꼬고 모욕적인 말투로 화가 잔뜩 난 상태로 얘기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가 맞다고 생각할 때, 이에 상충되는 의견이 나오면 틀렸다고 말하게 된다.
그래서 그 의지는 우리의 고집이 되고, 우리의 자존심으로 변하게 된다.
내 생각이 꺾이는 것은 자존심이 꺾이는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이 생각과 고집이 결국 하나님의 말씀조차도 틀렸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버린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습.
지금은 하나님의 뜻이 틀린 것 같다고 표현하는 점.
내 뜻과 생각이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점.
누군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해야 하는데, 바로처럼 그 사람에게 짜증을 낸다.
그 말씀이 자신을 살린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
내가 손해보는 것 같아도, 내가 옳다고 믿는 것과 조금 다르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과 생각과 말씀을 그대로 순종해볼 수는 없을까?
내 감정, 고집, 자존심을 건들여야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인 것이 맞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 우리가 살 수 있다.
이렇게 행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가 바로와 같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비록 지금 당장 내 눈 앞에 손해가 보이고, 인생이 힘들어질 것을 알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결국 나를 더 성장시키시고 쉴만한 물가로 이끄실 하나님의 큰 그림임을 믿으면서 나아가길 바란다.
그 믿음이 오늘 나를 살리고, 그 믿음의 고백이 오늘 나를 하나님의 뜻 위에 바로 서게 하시며, 그 믿음의 삶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힘과 능력이 될 것이다.
나의 생각, 고집, 자존심 그것들이 하나님과 앞서지 않기를 바란다.
예배 후 요약
: 출애굽기 10장 1~11절은 메뚜기 재앙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로에게 나아가라고 명하시는 장면이다. 하나님은 완악한 바로의 마음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고, 그 표징이 후대에 전해지게 하려 하셨다. 그러나 바로는 여전히 교만과 고집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는 형식적으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했지만, 남자들만 가라고 제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비꼬았다.
이 본문은 인간의 완고함과 자존심이 결국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게 됨을 보여준다. 내 생각이 옳다고 고집하며, 하나님의 말씀조차 내 기준에 맞추려 할 때, 우리는 바로와 같은 교만에 빠진다. 그러나 믿음은 내 고집을 꺾고, 손해 같아 보여도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순종하는 결단에서 시작된다. 나의 고집이 무너질 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참된 고백이 세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