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0030

2025년 07월 27일 주일 예배 설교

마가복음 10장 46~52절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예수를 만난 사람 - 바디매오

예수님을 만난 네 명의 사람

- 사마리아 여인

- 니고데모

- 바디매오

- (한 사람 더)

바디매오

  • '바'라는 말이 들어갔다는 것은 누구의 아들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 즉, 디매오의 아들을 의미한다.

  • 예 : "바요나의 시몬아"

  • 아버지의 이름까지 거론된 것을 보면, 막 가는 집안은 아니었다.

  • 하지만, 거지가 된 이유를 어느정도는 알 수 있다.

  • 그는 소경이었다.

그는 본인이 소경이라는 이유로 할 수 없는 것이 많았다.

  • 마치, 학생이 신발이 없어서 학교를 못 갈 것 같다고 하는 것이다.

바디매오는 길가에 앉아 있던 덕분에 여러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 그 중에서도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으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이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 그래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곳 여리고를 지나갈 때에,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예수님께 가서 외쳤다.

  •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즉, 바디매오는 이를 그냥 듣는 것이 아닌, 제대로 듣고 있었다.

  •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한 것은 신앙 고백이었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가던 길을 멈추시고, 바디매오를 데려오라고 하셨다.

  • 예수님 앞에 선 바디매오는 정말 많이 떨리고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 그때,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으셨고, 이에 앞을 보고 싶다고 얘기했다.

  • 앞을 보고 싶다는 것은 앞으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다른 사람들처럼 스스로 개척하면서 자신의 길을 펼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의 눈을 뜨게 하셨다.

  • 진정한 메시아임을 기억한 그의 영혼은 구원을 받았고, 그의 육체 또한 예수님과 사람들 앞에서 새 육체가 되는 순간이었다.

  • 이제 그는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고, 자신의 것을 챙겨가며, 삶을 개척해 나가는 순간만 남았다.

마가복음 10장 52절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제 되었으니, 가라고 하셨다.

  •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을 바디매오는 길에서 따르게 되었다.

  • 이제 눈이 보이니, 예수님께 감사하니, 예수님을 보면서 한참 동안 따라다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다.

  • 뒷통수만 보고 따라갔는가? 졸졸 따라갔는가?

개역성경 :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 우리가 흔히 하는 '쫓았다'라는 말처럼 보일 수 있다.

  • 하지만, 이는 '좇았다'라는 말의 의미였다. (어떤 목표나 이상을 추구하고, 남의 뜻이나 말을 따르다.)

  • 이제 바디매오는 앞을 볼 수 있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누구의 도움이 필요 없는 상황이 되었기에, 그에게 다른 것이 필요한 것은 없고, 꽃길만 남아 있었다.

  • 즉, 자신의 삶을 살아도 되었는데, 예수님께서 추구하신 뜻과 목적을 바디매오가 따르게 되었다.

그동안 아무것도 못 봤으니, 여행도 가고 하고 싶은거 하면서 "가라"라고 하신 것일까?

  • 아니다, 이제 다시 그의 삶의 현장 속으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 바디매오의 삶의 현장은 '길'이었다.

  • 날마다 앉아서 구걸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그 길이다.

마가복음 10장 52절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 예수님을 만난 곳은 길이었다.

  • 즉, 예수님도 어딘가로 향하던 길이었고, 그 길에서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 예수님이 어디를 향하던 길이셨을까?

    • 바로 예루살렘을 향한 길이었다.

    •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가시던 길이었다.

  • 즉, 바디매오는 자신의 삶이었던 길에서 예수님을 좇아가는 것이다.

  • "나의 생명의 은인이니깐, 고마워서 졸졸졸 쫓아가는 것이 아닌,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예루살렘을 향해 가던 그 길, 예수님의 사상과 마음과 사명의 길을 바디매오는 따라갔다는 것이다.

더이상 바디매오에게는 꿈이 없고, 오직 예수님만 있으면 되는 상황이 되었다.

  •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따르고 좇았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보내신 그곳에서 예수님을 어떻게 좇아가고 있는가?

  • 그것을 예수님께서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라고 한다.

  • 주님께선 우리를 부르셨고, 살리셨고, 죄악에 멀어 있는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시고, 닫혔던 귀를 열어 주시고, 패역한 우리의 마음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바꾸셨다.

  • 그리고 우리에게 '가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혹시, 이제 보게 되었으니, 다시 살았으니,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 하고 싶었던 것들 꺼내어 가면서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 "다음에 또 만나요"라고 하고는 있지 않은가?

  • 내가 이 길로 가려고 하니, 나와 같이 가달라고 하진 않는가?

  •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니, 이 길을 가게 해달라고 함께 해달라고 하고 있지는 않는가?

  • 예수님, 저 좀 따라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예수님의 거룩한 십자가 길을 막고 있지는 않는가?

주님이 가신 길은 우리를 살리기 위한 사랑과 희생의 길이었다.

  • 바디매오는 이 길을 따라간 것이다.

  • 각자의 길에 서 있는 우리.

  • 희생과 살아과 용서와 화평의 걸음을 옮겨야 한다.

  • 여전히 나의 고집과 이상과 목표를 따라 예수님과 다른 길을 걸어가서는 안 된다.

  • 예수님이 왜 나의 눈을 뜨게 하시고, 구원하시고, 다시 삶의 현장 속으로 '가라'고 하셨을까?

  • 왜 오해와 미움으로 얼룩진 많은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그곳으로 우리를 보내시는 것일까?

우리가 그 길에서 주님을 따라가야 하기에, 주님이 원하시고 보여주신 그 걸음인 것이다.

  • 우리보다 앞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자신이 죽음을 처할, 십자가를 처할 그곳을 향해 가시던 그 뒤를 따라 우리의 인생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마가복음 8장 34절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바로 이 길이다.

요한복음 10장 25~27절

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을 따르고, 양은 목자를 좇아가게 되어 있다.

  • 오늘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를 고쳐주시고 새롭게 하시고 구원해주셨다.

  • 그런 우리에게 다시 우리 삶의 현장 속으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 그 길에서 우리는 이제 우리가 보게 되었으니, 온전하게 되었으니, 우리의 이상과 뜻과 목표를 쫓아가는 것이 아닌, 삶의 현장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

우리 마음대로 살아가라고 예수님이 가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 이제 네 뜻대로 살아가라고 예수님이 우릴 구원하신 것이 아니다.

  • 내 양은 나를 따르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배 후 요약

: 바디매오는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었지만,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며 메시아로 고백하는 믿음을 가졌고, 예수님께 부르짖는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예수님은 그를 부르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말씀하시며 그의 눈을 뜨게 하셨다. 이후 바디매오는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곧 자신의 삶의 자리인 ‘길’에서 예수님의 걸음을 따라갔다.

예수님이 바디매오에게 “가라”고 하신 것은 세상 마음껏 살라는 뜻이 아니라, 그가 원래 있던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따르라’는 사명이었다. 바디매오는 단지 고마움이나 감격 때문에 따라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길, 곧 십자가를 향한 길, 희생과 사랑의 길을 본받고 좇은 것이다.

우리도 구원받은 이후, 다시 삶의 현장으로 보내심을 받는다. 그곳에서 예수님처럼 살아가라는 부르심이다. 내 뜻, 내 욕망, 내 이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를 고치시고 보내신 진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