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영광을 가리지 않는 성도로 구별되라
7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8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9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 허물—'결점, 실패'라는 뜻으로, 성도 간의 고소 사건 자체가 이미 신앙의 실패임을 나타냄
- 불의한 자—하나님의 공의 기준을 어기고, 자기 욕심을 따르는 자를 가리킴.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반면에, 불의한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기에 상소받지 못함
-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으로 새사람이 되어 거루하게 변화된 성도의 신분을 의미함.
1.바울은 성도 간의 고발에 대해 어떤 견해를 나타냅니까? (7절)
허물이라고 표현하며, 결점이나 실패와 같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2.바울은 불의한 자들을 어떻게 묘사합니까? (9~10절)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묘사했다.
3.바울은 왜 서로 고발하며 싸우기보다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속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까?
교회 공동체의 하나됨과 거룩성을 지키는 것이 세상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려 이기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성도 간의 고발과 다툼은 그 자체로 교회의 영광을 가리는 '뚜렷한 허물'이 되므로, 차라리 손해르 ㄹ보더라도 화평을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보았다.
성도들끼리 서로 고발하며 싸우는 것은 세상에 복음의 영광을 가리고 덕을 잃게 만드는 행위가 된다. 그리고 성도는 장차 세상을 판단하고 천사들까지 심판할 권세를 가진 자들인데, 지극히 작은 세상 문제로 세상 법정에 서고, 서로 고발하며 싸우는 것은 스스로의 영적 권위를 떨어뜨리는 일이 된다. 그리고 오히려 불의를 당하고 속아주는 편이 형제를 실조갛지 않게 하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의 정신을 실천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4.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손해를 감수하며, 거듭한 성도로서 거룩함을 지켜 구별되라는 바울의 권면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사실 손해를 감수한다는 것이 아직 100% 와닿지는 않는다. 손해처럼 보이고, 멍청해보이고, 부족해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뭐랄까? 이런 생각조차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면 주님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있거나, 세상에 있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기준이 세상에 있지 않고 주님에게 있는 자가 되고 싶다. 그러기 이해서는 더욱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손해를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거수 일투족, 사소한 것까지 다 따지고 짚어보면서 계산적인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분별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5-1.내가 불의한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 적은 언제입니까?
지하철을 타면 불만이 저절로 나온다. '왜 저렇게 행동하지. 왜 저렇게 밀지. 왜 저렇게 표현하지'처럼 말이다. 출퇴근을 하면서 정말 많은 인파로 인해서 몸이 밀리고 눌릴 때면 참 힘이 많이 든다. 나도 그렇게 닮아갔던 것 같다. 그리고 자리가 생기면 옆에 어른 분들이 보이셔도 내가 더 앉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5-2.주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불의한 습관을 버리고, 거룩한 성도로 구별되기 위해 무엇을 실천하겠습니까?
내가 좀 손해 보더라도, 내가 조금 힘들어도 남을 위해 힘쓰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조금 마음에 신경이 쓰이는 것들이 있으면 과감하게 주를 선택해보자.
오늘의 요약
바울은 성도 간의 다툼과 고발 자체가 이미 공동체 안의 “허물”이라고 말한다. 교회 안에서 서로를 세상 방식으로 판단하고 싸우며 이기려 하는 모습은 복음의 영광을 가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지 못하는 신앙의 실패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차라리 손해를 당하고 속아주는 편이 낫다고까지 말한다. 이는 불의를 묵인하라는 뜻이 아니라, 내 권리와 자존심을 끝까지 주장하며 공동체를 깨뜨리는 것보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화평과 사랑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또한 바울은 불의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경고한다. 음행, 탐욕, 속임, 모욕과 같은 죄들은 하나님 없는 삶의 모습이며, 성도는 더 이상 그런 삶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바울은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라고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 이미 씻음 받고 거룩하게 되었음을 선언한다. 즉, 성도는 과거의 죄된 모습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새 사람으로 변화된 존재라는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 신앙의 기준이 세상에 있는지, 하나님께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세상은 손해 보지 않는 삶, 끝까지 따지고 계산하는 삶을 지혜롭다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사랑 때문에 자신을 내어주셨다. 그래서 성도는 단순히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때로는 손해처럼 보이고 이해되지 않는 길일 수 있지만, 그 길 안에 하나님의 거룩함과 사랑이 담겨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도 내 권리와 감정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며, 구별된 성도로 살아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