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을 위해 죄와의 교제를 끊으라
9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10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11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2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13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
3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 탐하는 자들—'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자'란 뜻임. 영어성경(NASB)에서는 'the greedy' (탐욕스러운 자들)로 번역됨
- 너희 중에 내쫓으라—회개하지 않고 죄를 지속하는 자를 고옫체에서 내보내,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려는 바울의 단호한 명령
1.바울은 이전에 보낸 편지에서 어떤 내용을 말합니까? (9절)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는 내용을 말했다.
2.바울은 교회 안에서 악한 행위를 행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처하라고 말합니까? (11~13절)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고, 내쫓으라고 말했다.
3.바울은 왜 교회 안의 악한 자를 내쫓으라고 명령합니까?
공동체의 거룩성을 보존하고, 죄의 전염을 방지하며, 당사자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였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거룩한 공동체이다. 심각한 죄(음행 등)를 회개하지 않고 방치하면 교회의 영적 순결성이 훼손된다. 그리고 바울은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처럼, 악한 죄가 교회 전체로 번뎌 다른 성도들을 오염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 사람을 교회 밖(사탄의 영역)에 내어줌으로써 육신은 징계를 받게 하되, 결과적으로 영혼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즉, 이는 단순히 사람을 영구히 정죄하고 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하여 회개에 이르게 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영적 권징'이었다.
4.교회의 거룩함을 회복하기 위해 공동체가 죄 문제를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하는 바울을 보며 무엇을 느낍니까?
바울의 경고가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사실 있다. 죄 문제를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지만, 정죄하는 순간 바리새인과 별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한 번도 지으지 않은 자들만이 돌을 던지라고 하셨던 그 말씀처럼, 우리는 죄인이고 죄의 문제를 쉽게 끊어내지 못하는 존재인데, 이를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 자체가 과연 가능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고민을 해보니, 정죄와 거룩을 위한 분별을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바울이 말하는 단호함은 사람을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공동체와 그 사람을ㅇ 살리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더 깊이 고민하게 된다.
그렇다면, 단호하게 죄 문제를 대처할 수 있을까? 애매하게 넘기지 않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다. 사람은 존중하면서 죄는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뒤에서 말하지 않고, 직접 말해주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다. 험담이 아닌 직면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반복되는 죄에 대해서는 그냥 두지 않고, 짚어줄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더 나아가서 개인의 행동으로 인해서 분열이 되거나, 거짓이 지속되거나, 공개적인 죄를 보이게 되면, 이것은 개인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키는 문제로써 보게 된다.
그리고 바울이 말하는 단호함은 '버리고 내쫓으라'라는 의미 보다는 '돌이키게 하라'라는 의미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때로는 일정 거리를 두고, 책임을 지게 해서, 결국에는 돌아오게 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5-1.내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죄의 문제를 성숙하게 다뤘던 적은 언제입니까?
사실 너무 조심스러운 부분이라 생각되어서 그런지, 죄의 문제를 성숙하게 다뤘다고 자신 있게 말할 경험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듣고, 공감하고 짚어주면서 얘기를 나눴던 때가 생각난다. 오랜만에 교회를 다시 출석했고, 본인의 지난 시간들에 대해서 후회도 많이 하고, 스스로를 정죄를 많이 하던 지인의 얘기를 듣고, 그럴 때가 있을 수 있다고 얘기해주며, 결국 다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해준 모습이 생각난다.
5-2.공동체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숨겨진 죄를 끊어 내고 자정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실천하겠습니까?
코람데오를 더 기억해야 할 것 같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을 항상 기억하며,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고 바라보는 것. 그것이 숨겨진 죄를 끊어내고 자정 능력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도 외쳐본다, '코람데오'
오늘의 요약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음행하고 탐욕을 부리며 죄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을 그대로 두지 말라고 권면한다. 이는 세상 사람들과 완전히 관계를 끊으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서 죄를 당연하게 여기고 회개하지 않는 태도를 방치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교회는 거룩함을 잃지 않아야 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죄를 묵인하면 그것이 공동체 전체에 퍼질 수 있음을 경고하며, 때로는 단호한 권면과 분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목적은 정죄와 배척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다시 돌이키게 하기 위한 회복에 있다.
이 말씀을 통해 죄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연약하고 죄인 된 존재이기에 쉽게 남을 정죄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죄를 애매하게 넘기거나 침묵하는 것도 사랑은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단호함은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분별하고 공동체를 살리기 위한 책임 있는 사랑에 가깝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는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함께 돌이키고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결국 공동체의 거룩함은 거창한 것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코람데오’의 자세를 기억하며, 숨겨진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서로를 위해 진실하게 권면하며 살아가는 데에서 시작된다. 하나님께서는 정죄보다 회복을 원하시고, 오늘도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다시 돌이키길 기다리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