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0130

버려진 순간에도 주님은 함께 하신다

디모데후서 4장 16~22절

16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18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19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20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노니,

21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

22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사도행전 7장 20절

20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 변명바울이 재판에 회부됐을 때, 스스로 변호한 것을 뜻함.
  • 허물죄를 뜻함. 이 고백은 스데반이 순교하며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했던 장면을 연상케 함.
  • 밀레도소아시아 서쪽 해안의 도시로, 바울이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불러 작별 인사를 나눴던 곳임
내용관찰

1.바울은 스스로를 변호할 때 어떤 상황이었다고 설명합니까? (16절)

자신과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린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즉, 바울이 재판에 회부되었을 때 스스로 변호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2.바울은 자신이 힘들 때, 누구의 도우심을 받았다고 고백합니까? (17절)

주님의 도우심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주님께서 자신 곁에 서서 힘을 주셨고, 이는 그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시고자 함이었다.

연구와 묵상

3.바울이 자신을 버린 사람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울은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의 영역을 사람의 충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보았다. 바울은 재판 자리에서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라고 말한다. 이건 사실상 배신과 고립의 고백인데, 그럼에도 그는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라고 덧붙인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 상황을 사람들의 두려움이나 배신으로만 해석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파하시기 위해 허락하신 과정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로 다음 절에서 그는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한다. 즉, 사람은 떠났지만, 하나님은 떠나지 않으셨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사람을 정죄할 이유가 없었다.

또한, 바울은 십자가의 용서를 삶으로 따라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바울의 이 고백은 스데반의 순교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바울은 그때 스데반의 죽음에 동조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 바울은 스데반이 보여준 그리스도의 용서를 자신의 죽음을 앞둔 자리에서 그대로 살아냈다. 즉, 바울은 용서를 가르친 사도가 아니라, 용서를 빚진 자로 용서하는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끝까지 복음의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만약 바울이 디모데에게 "사람들이 나를 버렸다. 그들은 잘못했다. 기억하라, 조심하라" 라는 감정적 고백을 남겼다면, 디모데의 사역은 사람에 대한 불신과 분노로 시작될 위험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억울함은 남기지 않고, 원망을 유산으로 남기지 않고, 복음만 남기고 떠나는 것을 선택했다.

즉, 바울은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지만,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았다는 확신 속에서 십자가의 용서를 끝까지 선택했기 때문에, 자신을 떠난 이들에게도 허물을 돌리지 않은 것이다.

느낀 점

4.바울이 고난과 외로움 속에서도 함께하신 주님의 임재를 고백하는 모습을 보며 무엇을 느낍니까?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고난과 외로움 앞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바울은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았고, 결국 아무도 옆에 있지 않고 홀로 남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허물을 돌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지며, 십자가의 용서를 끝까지 선택했다.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함게 하신 주님의 임재를 고백하는 모습이 참 멋있었다.

작은 고난 앞에서도 쉽게 무너지는 나의 연약한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그 안에서 감사함을 찾기란 참 어렵지만, 그래도 감사함을 찾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결단과 적용

5-1.홀로 버려져 외롭게 싸울 때, 주님의 함께하심을 느낀 적이 있다면 언제입니까?

사실 버러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현재가 가장 먼저 떠올라진다. 함께 부트캠프를 준비하던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나만 떨어졌다. 막학기를 보내면서 "내년에 이곳에 꼭 가서 성공하자"라고 이야기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아쉽게도 나만 떨어지고 둘은 붙었다. 이 상황을 바라보면서 홀로 버려진 것 같기도 하고,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음에 외롭기도 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에게 허락하시지 않은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그 길은 같이 가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최종 테스트라는 자리까지 갈 수 있었고, 그 과정 가운데 배운 것들도 참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상실감에 빠지지 않고, 홀로 버려졌다고 생각하거나 외롭다고 느끼지 않도록 주님이 함께 해주셔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5-2.늘 함께하시는 주님과 동행하기 위해 오늘 무엇을 실천하겠습니까?

주 안에서 평안을 가득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이 질문처럼 주님과 동행해야 하는데, 주님 앞에 감출 것 하나 없고, 주님은 나보다 더 날 잘 아신다는 점을 기억하고 싶다. 매일 묵상의 자리를 사모하고, 주님을 붙잡는 자가 되고 싶다.


오늘의 요약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16~22절에서 모든 사람이 자신을 떠난 재판의 자리에서도 사람이 아닌 주님의 함께하심을 고백한다. 그는 배신과 고립 속에서도 자신을 버린 이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고, 주께서 곁에 서서 힘을 주셨음을 증언한다. 바울에게 이 고난의 순간은 실패나 버림이 아니라,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도록 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자리였으며, 끝까지 십자가의 용서를 선택함으로 복음만 남기고 떠나는 삶의 마무리였다.

이 말씀은 우리가 외롭고 억울한 순간에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사람의 반응과 상황에 매이기보다, 늘 함께하시는 주님의 임재를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상처와 비교, 좌절의 순간에도 원망을 유산으로 남기지 않고, 용서와 복음을 선택할 때 우리는 바울처럼 주 안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도 주님 앞에 숨김없이 나아가며, 묵상의 자리에서 동행하시는 주님을 붙드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