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2월 23일 주일 예배 설교
미디안 광야의 우물가에서 발견해야 하는 것들
모세가 도망가게 된 이유
: 애굽 병사 한 명을 죽이게 된 사실을 바로에게 틀키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모세의 혈통이 왕가 사람이었다면, 그냥 넘어갔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살인을 한 것은 분명하게 잘못된 것이지만, 그의 동기에는 히브리인을 형제로 품고 있는 마음이었다.
당시 상황
- 이스라엘 남자 아이를 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사랑하는 아들이 궁으로 데려온 양아들이었기에 뭐라고 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 그러던 찰나 이 일이 일어나게 되었고, 이것을 기회로 삼아 모세를 잡으려고 했다.
- 모세가 잘 도망다닌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바로의 손에 잡히지 않고 미디안 땅으로 가게 하신 것이다.
- 그렇게 모세의 두 번째 시작이 찾아왔지만, 그 시작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첫 번째, 지금 우리가 있는 그 자리를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출애굽기 2장 15절
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당시 모세의 상황
- 애굽에서 미디안까지가 약 600km 정도 되고, 이 먼 거리를 홀로 도망갔으니, 미디안에 도착했을 때 당시의 꼴이 안 좋았을 것이다.
- 아는 사람도 없고, 낯선 땅에서 초라하게 우물 옆에 앉아 있었다.
- 이 시간들 속에서 모세에게는 늘 죽음의 그림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 살아야 하니깐, 물이라도 있는 우물 곁에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이쯤 되면, 하나님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아갈 수 없고, 긴 시간 동안 나를 지켜주셨고, 나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는 고백이 나왔으면 좋았을 것이다.
- 하지만 모세에게는 초라하게 우물 곁에 앉아 있으면서, 현실을 자각하는 시간이 왔었을 것이다.
- 이전의 왕국의 삶이 생각났을 것이다.
- 가장 높은 궁에서 가장 낮은 미디안의 우물에서 도망자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
그러나 우리가 잊은 것이 있다.
- 바로 원래 모세가 있어야 할 자리가 지금의 자리인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 원래 죽었어야 할 운명이었고, 죽음의 자리에 있어야 했었던 모세였다.
- 초라한 모습이어도, 살아만 있는 것이라도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 그 이후 그는 그곳에서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광야 생활을 하게 되었다.
원래 우리는 죄로 얼룩져서 씻을 수 없는 죄인이었다.
- 그래서 죽어 마땅한 존재이고, 인생 속에서 하나님을 아프게 하고,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삶을 살아내지 못했지만,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신기한 것이다.
- 감히 기적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 그렇기에 우리는 모세와 같이 죽음이 이미 정해져 있던 존재였고, 살아 있는 것 같아도 영원한 죽음을 갖고 있었고, 생명을 연명하는 초라한 존재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 잘 되는 일도 없고 문제 투성이어도 이렇게라도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을 빠르게 깨달아야 한다.
- 숨을 쉴 수 있음에 감사하고, 힘들어도 꾸역꾸역 버텨낼 수 있는 것이 은혜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 나의 처지, 원래 내가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되는 것.
하나님이 이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우리를 미디안 광야에 두시려고 하시는 것일 수도 있다.
- 우리의 모습이 모세와 같이 보잘 것 없어 보인다고 생각한다면
- 하는 일마다 엉망징창이고, 하는 일마다 되지 않고, 어려움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면
- 우리는 그 어려움 속에서 영원히 살아야 하는 존재였다는 점을, 우리의 처지를 빠르게 깨달아야 한다.
- 그래서 은혜가 하나님이 필요한 존재, 매일매일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
두 번째, 우리의 본향이 어디인지를 정확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2장 16~17절
16.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들의 아버지의 양 떼에게 먹이려 하는데
17.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 떼에게 먹이니라
- 여인 일곱 명이 모세가 있는 우물로 양떼에게 먹일 물을 길러 왔다.
- 하지만 험학하게 생긴 사람들이 여인들에게 찾아와 물을 떼지 못하게 했다.
- 모세가 이 남자들을 쫒아내게 하고, 여인들이 양 떼에게 물을 먹일 수 있게 도와주었다.
- 이후 그녀는 그 일을 아버지인 르우엘에게 이야기했다. (르우엘은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이었다)
출애굽이 2장 18~20절
18.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버지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19. 그들이 이르되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 떼에게 먹였나이다"
20. 아버지가 딸들에게 이르되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려두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라" 하였더라
21.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의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했다.
- 도망을 다니면서 구할 것이 없던 모세였기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 딸들만 보내서 양 떼에 물을 먹이게 하는 것이 불안했을텐데, 마침 좋은 사내가 오게 되어서 딸을 주었을 것이다.
출애굽기 2장 22절
22.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 단순한 결혼 스토리 같지만, 그 안에서 모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 애굽의 궁의 귀족이 하루 앞에 양치기가 되었지만, 그래도 도망자로 배고프던 시절보다 훨씬 낫다.
- 도망자 모세는 미디안에서 아들딸 잘 낳고 잘 지냈다고 이렇게 지은 것이 아니다.
그의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지었다.
- 애굽을 빠져 나와서 다른 동네에 살게 되었으니,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그는 가정을 꾸리고 정착을 한 상태이지만, 여전히 아들의 이름을 통해 '나그네, 손님'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 즉, 돌아갈 자신의 집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 돌아가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애굽을 말이다.
- 그러나 그는 돌아가지도 못하고,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이를 추억하고자 했었다.
모세가 돌아가고 그리워했어야 할 곳은 애굽이 아니었다.
- 바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이었다.
- 이 땅이 본향이 되어야 하지만, 아직 모세는 그러한 마음이 되지 않았었다.
우리는 그러면 안 되는 존재이다.
- 이 땅에서 나그네이고 백성이다.
- 우리의 본향은 애굽도 이 세상도 아니다.
- 오직 하늘 나라가 본향이고, 이 땅을 살아가면서 이 교회가 우리의 본향인 것이다.
- 날마다 그리워하고 보고싶어하고 달려가고 싶은 곳은 우리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야 할 곳이다.
우물가에 앉아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 하나님이 없는 영광의 때를 바라보고 있는 삶이라면, 말씀을 통해 깨달아야 한다.
- 지금 이곳이 우리가 살아가고, 삶의 끝자락에서 이곳에 올 수 있는 것이 누구의 영광인지 알고 있다.
- 이 땅에서 삶의 끝이 아닌, 저 하늘 나라에서 있는 삶을 기억하며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우리가 그리워하고 보고싶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 오늘 우리의 소망인 곳을 다시 재점검해야 한다.
나는 이 땅에서 나그네 되었도다
- 이 고백이 애굽을 본향으로 생각하는 고백이 아닌, 이 땅의 고백이 아닌, 우리의 주인되신 피값으로 세우신 이 교회를 하늘나라를 향해 고백하길 바란다.
- 그렇게 되면 우리의 고백은 우리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예배 후 요약
: 모세는 애굽에서 사람을 죽인 일이 발각되어 도망쳤고, 미디안 땅의 우물가에서 목자들에게 쫓기는 여인들을 도와주었다. 이 일로 인해 미디안 제사장 르우엘의 집에 머물며 그의 딸 십보라와 결혼해 아들 게르솜을 낳았다. 그러나 모세는 여전히 애굽을 그리워하며, 자신을 타국의 나그네로 인식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지금 있는 자리에서 감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모세는 궁전에서 광야로 전락했지만, 죽어야 할 운명이었던 자신이 살아 있음을 깨달아야 했다. 우리 또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생존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우리의 본향이 어디인지 깨달아야 한다. 모세는 애굽을 그리워했지만, 그가 돌아가야 할 곳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늘 나라임을 인식해야 한다.
결국, 모세의 미디안 생활은 하나님이 그를 준비시키는 과정이었고,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인도되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